박스터 이름 앞에 붙은 영광의 숫자 718. 누구도 박스터의 변화를 두고 그저 페이스리프트라 말하지 않는다
올해로 탄생 20주년을 맞은 포르쉐 박스터.
사람들은 위시리스트에 기꺼이 박스터를 올린다. 진정한 스포츠카를 원하거나 911이 조금은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 제격이다. 그렇게 박스터가 20살이 되는 해, 포르쉐는 새로운 박스터 앞에 718을 갖다 붙였다. 이름도 엔진도 변화를 선택한 것이다. 시기적으로는 페이스리프트가 맞다. 하지만 박스터에서 718 박스터로, 981에서 982로 이름과 코드명 모두 바꾼 신차다.
변화는 실로 극적이다. 718은 스포츠카로서 가장 중요한 심장을 통째로 바꿔버렸다. 그 결과 0→시속 100km 가속을 0.6초나 앞당기고, 연비는 13퍼센트 좋아졌다. 엔진은 두 개의 실린더를 덜어내는 대신 터보차저가 달라붙었다. 그것도 가변 터빈 구조의 VTG(Variable Turbine Geometry). 자연흡기 뺨치는 반응성 때문이다. 임펠러 주변에 가변으로 작동하는 날을 달아 터보랙을 줄인다. 발화점이 높은 가솔린엔진 중에 VTG를 도입한 브랜드는 포르쉐가 유일하다. 그만큼 특수소재와 고도의 기술이 투입됐다는 증거.
시승관점을 엔진에 집중시켰다. 포르쉐에 따르면 출력이나 효율 모두 높아졌지만, 그래도 수평대향 4기통 엔진은 검증이 필요했다. 일단 박력 있는 엔진사운드는 합격. 포르쉐 특유의 걸걸한 소리가 실내를 가득 메운다.
그렇다면 파워는 어떨까? 718 박스터 S는 잔인하게 출력을 쏟아냈다. 뒤 타이어는 아스팔트를 사납게 뜯어내고, 나는 시트에 사정없이 파묻혔다. 그런데도 트랙션은 충분히 살아있었다. 단단한 핸들을 휘어잡고서 무식하게 가속페달을 내리밟아도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 와중에 섀시는 여유를 부렸다. 요철은 유연하게 품으면서 롤과 피치는 완벽하게 다잡았다. 컴포트와 스포츠를 오가는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PASM)는 마치 스포츠 섀시의 교보재 같은 존재다. 만나는 코너마다 굳이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포르쉐의 믿음이자 서스펜션의 가능성을 시험해 볼 기회다.
포르쉐 스태빌리티 매니지먼트(PSM)를 스포츠 모드로 두면서 본격적인 질주가 시작됐다. 뜨거운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하늘 아래, 얼마 남지 않은 718과의 여정을 위해 소프트톱을 열었다. PDK는 잔뜩 긴장한 상태로 기어를 두 개씩 뛰어넘었다. 트윈머플러에서 어김없이 총성이 울려 퍼진다.
스포츠 리스폰스 버튼이 허락한 시간은 단 20초. 모터레이싱에서 영감을 받은 마법의 버튼 하나로 718은 무적이 된다. 기어는 또 다시 1단이 내려갔다. 엔진과 트랜스미션의 응답은 이미 최고조. 언제나 질주를 허락한718은 몇 번이고 뜨겁게 내달렸다.
박스터는 새로운 이름을 붙일 자격이 충분했다. 덤으로 새롭게 올라간 바이제논 헤드라이트와 4-포인트 LED 데이타임 라이트가 포르쉐 존재감을 진하게 풍긴다. 리어 스포일러는 여전히 속도에 반응하며, 한 몸이었던 테일램프는 완벽하게 분리됐다. 덕분에 낮고 풍만한 로드스터 뒤태가 유난히 두드러진다.
오직 두 자리만 허락하는 실내는 결코 편한 자리는 아니다. 하지만 718의 존재를 알고 올라탔다면 절대 푸념하지 않을 것이다. 팽팽한 시트는 촉감이나 착좌감이 완벽했다. 볼스터까지 몸에 맞게 조이면 버킷시트가 부럽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스티어링은 918 스파이더 것을 가져왔다. 지름 376밀리미터의 스포츠 스티어링 휠이다. 대시보드 위로는 911처럼 크로노미터가 올라갔다. 심지어 스포츠 리스폰스 버튼도 데칼코마니처럼 똑같다. 형을 닮고 싶은 아우는 그렇게 생색을 냈다.
포르쉐는 더이상 ‘다운사이징’이 아니라 ‘라이트사이징’(Right sizing)이라 말한다. 성능과 환경을 위한 무조건적인 감량이 아니라, 말처럼 정확한 체급으로 변화를 의미한다. 박스터의 실린더는 줄었지만 성능도 연비도 개선된 의미 있는 성장을 거듭했다. 과거 718의 영광스러운 족보가 좋은 명분이 됐다. 포르쉐가 박스터 앞에 ‘718’을 다시 붙인 이유다.
♦ 718과 터보의 만남
박스터가 나온 지 20년. 이번 변화의 핵심은 터보를 품은 엔진이다. 모든 브랜드들이 다운사이징에 뛰어들었고, 포르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포르쉐가 추구하는 목표는 여느 타 브랜드와 달랐고, 그래서 다운사이징이 아닌 라이트사이징이라고 부른다.
911에는 트윈터보를 얹었지만, 718 박스터에는 싱글터보를 얹었다. 그렇다면 터보랙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 이차는 포르쉐다. 가변식 터보 VTG를 얹어 저속 고속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최고성능을 끌어낸다. 이는 911 터보 모델에만 독점적으로 사용했던 기술이다.
718 박스터의 2.0리터 엔진은 911 에 올라간 3.0리터 엔진에서 두 개의 실린더를 덜어냈다. 최고출력은 300마력. S는 2.5리터 엔진으로 350마력까지 끌어올렸다. 최대토크는 각각 38.7kg·m, 42.8kg·m으로 1천900~4천500rpm까지 이어진다. 이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화끈한 파워를 보여준다는 의미.
혹자는 말한다. “터보를 받아들인다는 건 배기사운드가 약해지거나 매력이 떨어짐을 의미한다”라고. 718 박스터의 톱을 열고, 가속페달을 지그시 밟아보자. 구시대적 편견이 말끔히 사라질 테니.
글사진 | 기어박스(gearba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