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평가받는 재규어 디자인총괄 이안 칼럼이 한국을 찾았다. 총 네 번째 방한이며 올해에만 벌써 두 번째다. 이번 방한은 국내 대학생 대상의 ‘재규어 카 디자인 어워드 2016’의 최종 심사를 위해서다. 이안 칼럼은 자동자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수평적 사고를 강조한다. 뻔하고 쉬운 해답을 찾는 새로운 답과 방법을 찾는 습관을 갖게 되면 3~4가지의 또 다른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다는 것. 이것이 자동차 디자이너로서 갖춰야 할 제1 덕목이라고 그는 답했다.
최근 재규어는 전기 컨셉트카 ‘I-페이스’를 공개하며 기존 자동차 디자인의 틀을 완전히 뒤엎은 새로운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을 제시했다. 이러한 파격적인 디자인의 중심에는 역시 이안 칼럼이 있었다. 지난 3일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그와 만나 자동차 디자인에 대해 더 자세한 얘기를 나눠봤다.
–규제로 인한 자동차 디자인 제약은 감성 부족이라는 우려가 있다
“(이안 칼럼 재규어 디자인 총괄 디렉터)자동차 디자인에는 법규의 제약이 있다. 안전규정뿐 아니라 질량 등 여러 부분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유럽의 경우 보행자 안전규정 맞추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 디자이너으로서 각종 규제를 모아놓은 가이드 라인을 가지고. 어떻게 이를 충족하면서 디자인적인 자율성을 추구할지 고민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 앞부분이 규제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규제를 맞춰나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혁신이 나오기도 한다.”
–기술은 시장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도 있다. 요새 시장이라고 하면 바로 중국을 들 수 있는데 중국만을 위한 제품 디자인 계획이 있는가
“(이안 칼럼)우리는 특정 시장을 위한 제품을 디자인 하거나 생산하지 않는다. 중국의 경우 롱휠베이스를 생산하는 것 이외 별도의 계획이 없다. 기술은 특정 시장에만 적용하는 게 아니라 글로벌에 통용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전장 부문 인력을 1,000%나 늘렸다. 시장에서 커넥티드 관련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을 가면 중국만을 위한 제품 계획에 대해 질문을 받기도 한다. 중국만의 특성이 묻어난 제품을 원하면 중국 내수 브랜드 제품을 사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재규어는 재규어만의 디자인을 만들 뿐이다.”
–이안칼럼을 3대 디자이너라고 평가한다. 그 외 누구를 꼽나
“(이안 칼럼)내가 그러한 평가를 받는지 몰랐다. 감사한 일이다. 개인적으로 글로벌 톱 자동차 디자이너를 뽑자면 1960년대 활동한 GM의 빌 미첼을 말하고 싶다. 굉장히 천재적인 디자이너인데 그가 만든 차를 보면 항상 특정 요소들이 있었고 우아하다. 현대기아차의 피터 슈라이어 역시 존경하는 디자이너다. 또 이탈디자인의 조르제토 주지아로는 나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디자이너다. 이외에 폭스바겐의 마이클 마우어와 볼보의 피터 호버리도 꼽고 싶다.”
–수 십년 간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아쉬움이 남는 디자인이 있는지
“(이안 칼럼)모든 디자인은 교훈을 준다. 그래서 딱히 후회가 남는 디자인은 없다. 단, 애정이 덜 가는 디자인은 있었는데 바로 ‘로버 75 왜건’이다. 괜찮은 수준의 디자인이라고 평가하고 싶지만 지나치게 실용적이었던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 영감을 받는 차가 있다면 말해달라
“(이안 칼럼)1960년대의 이탈리아 차를 좋아한다. 특히 1961년에 나온 페라리 250으로부터 영감을 많이 받았다. E타입보다 심미적인 가치는 떨어지지만 제품의 자신감, 또는 순수함이 있었던 것 같다. 세단 중에서는 XJ 시리즈 1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디자이너들은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의 상충관계 어려움에 토로한다. 양산차를 기준으로 최초로 나왔던 디자인이 100%라면 양산의 결과물은 어느 정도 구현되나? 특정 제품을 예를 들어 어떠한 요소 때문에 초기 컨셉 디자인을 100% 구현하지 못했는지 설명해 달라
“(이안 칼럼)컨셉트카 디자인은 현실보다 과장된 것을 그린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시각적으로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그리는 것이다. 캐리커쳐를 그려놓고 현실에 맞게 여러 단계별로 논의를 통해 조정해 나간다. 예를 들어 XE는 컨셉트카보다 25㎜ 지붕이 높아졌다. 초기 디자인에선 지붕이 낮았지만 양산단계에서 기술적으로 패키징이 필요했기 때문에 조정이 필요했다. 엔지니어들은 더 높이자고 주장했지만 그러면 차의 비율이 틀어져 거절했다.”
–과거 학창시절 미래지향적인 자동차 디자인을 상상해봤을텐데 현재를 보면 상상했던 것과 많이 차이가 나는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 등 상상했던 차들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30년 전과 비교해 전체적인 차의 프로파일이나 근본적인 요소들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최근 공개한 전기컨셉카 ‘I-페이스’가 과거 상상했던 가장 유사한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규제가 많아짐에 따라 디자인이 많이 변하지 못했다. 그러나 전기차는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이 가능한 분야다. 또한 과거에는 벨트라인이 낮아져 윈도우가 최소화 하는게 유행이었는데 지금은 벨트라인이 높아졌다. 패션과 마찬가지로 자동차 디자인에도 이러한 트렌드가 많이 반영되는 것 같다.”
–다양한 분야 가운데 유독 자동차 디자인이 갖는 매력은
“(이안 칼럼)역동성이 있다는 점이 다른 분야와 가장 차별적인 부분이다. 자동차의 속성이 역동적인 것이다. 서 있어도 마치 움직일 것 같고, 보고만 있어도 운전의 경험을 선사할 것 같은 느낌이 주기에 사람들이 자동차 디자인을 좋아한다. 또 자동차 디자인은 스토리텔링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들은 흥미롭고 편리하지만 역동성이 없고, 고정적인 제품이다. 자동차 같은 구성을 가진 제품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I-페이스의 실내의 디자인이 운전자 중심인데 향후 제품에 두루 적용할 수 있을지
“(이안 칼럼)스포티함을 강조하고 싶으면 운전자 위주의 구성을 할 것이며 럭셔리 세단의 경우 조수석과 균형을 맞출 것이다. 어떤 부분을 강조하는 것은 제품별로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운전자 중심의 디자인을 계속 선보일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시각적인 것이며 기능적으로는 운전자 중심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롱노즈 숏데크 같은 비율은 재규어의 특성이라고 생각하는데 I-페이스는 정반대로 후드가 짧다. 이러한 요소가 향후 브랜드에 영향을 미칠까
“(이안 칼럼)후드가 길었던 이유는 엔진크기 때문이다. 디자인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차의 특정 부분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앞단이 짧아지는 대신 펜더를 크게 만들고 뒤로 갈수록 디자인이 강조되는 게 I-페이스의 디자인이다. 이러한 디자인은 향후 출시될 전기차에서 볼 수 있을 것이며, 다른 브랜드에서도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1954년 스코틀랜드 출생인 이안 칼럼은 영국 글래스고 예술학교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하고 영국 왕립 예술대학에서 자동차 디자인 석사과정을 밟았다. 포드 디자인 스튜디오를 거쳐 TWR 디자인의 수석 디자이너를 역임하고, 1999년 재규어에 수석 디자이너로 합류했다. 2014년에는 영국왕립디자이너협회로부터 자동차산업디자인 공로를 인정받아 최고 영예인 ‘미네르바 메달’을 수여 받았다. 그의 역작으로 꼽히는 F-타입의 경우 ‘2013 올해의 자동차 디자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