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 브랜드의 디자인 총괄 이안 칼럼을 다시 만났다. 2013년 처음 한국에 왔었고 지난 1월에 이어 한 해 두 번씩이나 한국을 방문한 그를 재규어 브랜드가 진출한 국가 중 최초로 진행된 ‘재규어 카 디자인 어워드 2016’ 행사장에서 따로 만났다. 이 행사는 대한민국의 차세대 자동차 디자이너 육성을 목표로 재규어코리아가 기획한 사회공헌 활동이다. 1999년 재규어에 합류한 이후 몇 차례 만났으며 그를 공식적으로 인터뷰한 것은 2006년 런던 모터쇼 현장에서였다. 이후 그를 통해 변화하는 재규어를 지켜 보았고 해외 출장 때마다 다양한 의견을 교환한 바 있다.
이안 칼럼은 영국 RCA(Royal College of Art)출신이다. 미국의 ACCD(Art Center College of Design)와 함께 자동차 디자인 분야에서는 최고로 꼽히고 있는 대학이다. 포드에서 1979년부터 1990년까지 12년 동안 일했으며 아스톤 마틴 DB7을 디자인하기도 했고 1999년에 재규어 디자인 총괄 디렉터로 임명됐다. 재규어는 2008년 초 타타에 넘어가기 전까지 포드 산하에 있었다.
그는 당시 재규어의 디자인이 좋게 표현하면 클래시컬(Classical)하고 보수적이라는 인상을, 다른 한편으로는 할아버지차 같은 느낌이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그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나는 어릴 때 재규어 E타입에 매료됐었다. 그런 시각에서 다시 재규어에 돌아왔을 때 생산되고 있는 모델들은 재규어의 전통을 살리고는 있었지만 시대와의 대화가 부족했다는 것을 느꼈다. 재규어는 그때부터 “ New Fashioned Luxury “라는 브랜드 전략”을 추구해 오고 있다. 규모중심의 경쟁 측면으로 나아가는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트렌드에서나, 대부분의 수많은 프리미엄 브랜드가 비슷하게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과는 좀 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고자 하는 데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그가 만든 첫 작품이 2세대 XK다. 2세대 XK에 대해 이안 칼럼은 뉴 XK는 “Contemporary Luxury Modernism(그 시대를 반영한 럭셔리하고 현대적인 감각)”을 추구하는 재규어의 가장 최근의 활동의 결과라고 말했었다. 더불어 재규어의 브랜드 슬로건인 ‘Beautiful Fast Car(아름다운 고성능)’라는 브랜드 슬로건 또한 그의 디자인 철학의 중요한 일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언제나 아름다움과 단순함, 그리고 성능을 표현하는 디자인을 주장해오고 있다. 그를 통해 심미성을 표현해야 하고 스토리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재규어 시절이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그가 참여한 초창기인 2002년에는 10만 3,000대, 2005년에는 14만 2,375대 상승세가 이어졌었다. 하지만 타타로 넘어간 첫 해인 2008년에는 미국 발 금융위기로 3만대 수준으로 급락했었다. 그러던 것이 2013년 7만 6,668대, 2015년에는 8만 3,986대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제품 때문이다. 재규어의 독창성이 틀을 갖추게 되면서 그들이 추구하는 브랜드 방향성이 궤도에 오른 결과다. 2015년만 해도XE와 신형 XF, SUV F-Pace 가 출시되며 올 해는 9월 한 달에만 90%가 증가하는 등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금 재규어 라인업은 라인업 확대와 패밀리 룩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F-Pace에 이어 소형 크로스오버 i-Pace도 컨셉트카가 공개되어 있다. 이안 칼럼은 i-Pace까지는 지금과 같은 패밀리 룩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지금의 색깔이 글로벌 시장에서 재규어의 독창성을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디자인을 통한 독창성을 정립하고 그것을 표현해 시장에서 받아 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재규어와 이안 칼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신세대 재규어의 디자인 언어의 시작은 2세대 XK 이고 그 완성이 XJ이며 그 파생이 F-pace다. 그리고 전동화 시대로의 전이를 위한 경계선에 앞으로 등장할 I-Pace가 있다. I-Pace는 그가 30년 전에 상상했던 스타일링이라고 한다.
그는 60년대 GM의 빌 미첼이 만들어 낸 창조적이고 독창적이며 우아한 디자인을 높이 평가한다.
“이탈 디자인의 쥬지아로를 비롯해 1950년대와 60년대의 차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있다. GM의 60년대 영광을 이끌었던 빌 미첼(Bill Mitchell)을 비롯해 현대차그룹의 피터 슈라이어와 포드와 볼보에서 일했던 피터 홀버리(Peter Holbury), 포르쉐 918등을 디자인한 현재 폭스바겐 그룹 디자인 수장 마이클 마우어(Michael Mauer)등이 내가 높이 평가하는 디자이너다. 자동차로는 1960년대 페라리 모델들을 좋아하는데 특히 1961년에 데뷔한 페라리 250을 높이 평가한다. 재규어 E타입보다 심미성은 떨어지지만 자신감과 독창성이 넘친 모델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은 변화하는 시대에 또 다른 과제를 풀어야 할 입장에 있다.
“전동화와 자율주행차 시대가 도래하면서 갈수록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각종 법규와 안전규제, 질량 변화 등을 고려해야 한다. 유럽 같은 경우 보행자 안전규제 맞추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는 룰 북이라고 하는 각종 규제를 모아놓은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하면서 우리만의 자율성을 추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특정 요소에서는 혁신이 필요하다. 어떤 경우는 증폭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자동차 앞 부분의 법규 규제에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맨 아래부터 보닛까지, 양쪽 사이드까지 규제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분이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 규제를 맞춰 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혁신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보행자 안전규정에 맞지 않는 경우도 있고 헤드램프의 각도로 인한 시야 방해 등 각종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두 가지 복합적으로 적용되기도 한다. 어쨌거나 어려운 과제이지만 어떻게 하든 해결해야 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한 정답은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디자인이 그렇게 획기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며 자동차만큼 다양성을 통해 전체적은 그림을 내놓는 제품은 없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날으는 차에 대한 이야기가 1950년에 나왔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지금의 자동차 디자인도 근본적인 요소라는 측면에서는 3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은 안전을 위한 규제 강화로 인한 것도 있다. 다만 전기차로 인해 더 미래지향적 차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I-Pace에 더 애정이 간다. 앞으로도 패션이나 트렌드가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젊었을 때는 자동차의 벨트라인이 최대한 낮았었다. 지금은 그린하우스를 최소화해 길어 보이게 만드는 것이 트렌드다. 옷도 그런 유행의 길을 걷고 있듯이 자동차에도 그런 트렌드가 있다. 하지만 다른 제품과 달리 자동차 디자인은 다이나믹성이라는 점 때문에 좋아한다. 보고만 있어도 움직이는 느낌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과 보고만 있어도 운전하면 경험을 제공할 것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래서 자동차 디자인에 매료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포티한 차와 럭셔리카의 스타일링 디자인은 다를 수밖에 없다. 세그먼트와 장르에 따라 차별화가 가능하다. 자동차 디자인은 역사적으로도 역동성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하는 작업이다. 디자인을 통해 그 차의 성격을 표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전 세계 그 어떤 제품도 자동차와 같은 구성과 전체적인 그림을 가진 제품이 없다. 누구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독창성은 세계 시장에서 통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중국 기자들이 중국 시장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하지만 중국시장만을 위한 특별한 디자인은 없다. 특정시장을 위한 특정차를 디자인 하지는 않는다. 재규어는 그냥 재규어다. 중국 특성의 차를 원한다면 중국산 차를 사면 된다. 다만 중국에는 특별히 롱 휠 베이스 버전이 필요하기 때문에 XFL과 같은 모델은 만들고 있다. 기술은 글로벌 하다. 특정 시장보다는 시대의 변화를 감지해야 한다. 재규어는 지난 2년 동안 전자 부문의 연구개발 인원을 1,000% 가량 늘렸다. 인터페이스와 커넥티비티가 경쟁력의 핵심이 되어가는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