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신형 레인지로버 이보크 컨버터블은 탱고 오렌지색을 입은 양산 이전 버전이었고, 랜드로버는 스위스 알프스에서 그 차를 몰아보도록 지원해줬다. 짙은 파란색 하늘 아래 깊이 눈 쌓인 수목 한계선보다 높은 그 곳에서, 이보크 라인업에 더해진 화제의 오픈톱 모델은 외향적인 감각을 아주 조금 드러낼 뿐이었다. 시승은 그저 맛보기에 불과했다. 울긋불긋 화려한 색깔과 분위기의 스키 리조트에서는 많은 것들이 들떠 있었다.
6개월 후,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양산 모델이 HSE 다이내믹 트림이 포함된 20인치 알로이 휠을 끼우고 모습을 드러냈다. 직물 재질 지붕은 검정색이다. 사실 이런 차를 사게 만드는 동기는 이 차의 아이디어에 있다. 레인지로버의 모습과 컨버터블용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SUV의 긍정적인 면이 하나의 구성 안에 모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 세 가지 특성을 모두 담을 수 있는 것이 네바퀴굴림차라는 점은 명백한 진리다. 눈 내리는 스위스 산골에서 24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지금은 영국 남부에서 현실생활에서의 매력을 확인해야 한다. 관심을 끌 만한 산 하나조차 보이지 않는 풍경 앞에 있자니, 직물제 지붕은 하드톱 모델의 뚜렷한 형태와 별로 비슷하지 않고 쿠페의 성가시게 큰 도어만 남아 있다. 어른들은 불평을 터뜨리는 것이 당연할 정도로 비좁은 뒷좌석도 마찬가지다.
나는 교과서적인 방법으로 컨버터블을 몰고 탐험하는 길을 택했다. 영국 남해안으로 서둘러 달려가 소금기 섞인 바닷바람을 한껏 들이마시고 신선한 아이스크림으로 배를 가득 채우기로 했다. 케이터햄을 가진 사람에게는 익숙한 여행이다. 대개 자기만족과 그 과정에서 바람에 머리를 흩날리며 얻는 쾌감으로 마무리되는 여행 말이다.
이런 여행에 가져갈 차의 정석은 케이터햄 세븐이다. 그러나 이보크에게는 이보크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예를 들어, 레이스 힐(Leith Hill)에 있는 산을 빙 돌아서 질주하는 대신 험한 길을 타고 넘어갈 수 있다. 어쨌든, ‘신이 내린 국도’라고 할 수 있는 그린 레인(Green lane)은 최고의 풍경을 볼 수 있는 길이다. 최근 우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에리얼 노매드로 산을 타고 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솔직히 얘기해 서머셋(Somerset) 지방의 에리얼이 만든 불량스러운 차는 서리(Surrey) 지방의 완만한 샛길 대부분을 너무 빠르고 요란스럽게 주파했다. 그와는 달리, 지붕을 벗긴 레인지로버는 같은 길에서 연못 위를 헤엄치는 청둥오리처럼 조용하게 달렸다.
레인지로버가 짧게나마 물기가 있는 진흙탕 길을 헤쳐 나간 것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이보크는 네바퀴굴림 파워트레인이 기본이어서, 랜드로버 고유의 터레인 리스폰스 시스템, 내리막 속도 제어(HDC) 기능, 208mm의 충분한 최저 지상고를 갖추고 있다. 9단 자동변속기가 아주 느린 속도에서도 어마어마한 힘을 꾸준히 전달하고, 든든한 수준의 구동력이 뒷받침하고 있기에 어느 도로에서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줬다.
이쯤 되면 이보크가 시골길을 주파하는 것보다는 시골길이 차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가 더 관건이다. 그린 레인을 달리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숲 속에서 지저분해진 네바퀴굴림차를 만날 때 반응이 엇갈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랜드로버의 소형 컨버터블은 그렇지 않다. 개와 산책하는 사람들, 말 타는 사람들, 하이킹하는 사람들, 휴가 나온 사람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미소를 지으며 길 한 쪽으로 비켜선다. 우리가 달린 샛길이 꽤 좁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굉장한 호의로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카브리올레가 만들어내는 아웃도어에서의 관계는 끊임없이 몰아쳐 지나가는 바람이 늘 함께 하기 마련이다. 이보크에 타고 있으면, 잎사귀들과 안개가 머리 위를 뒤덮으며 지나가는 분위기 속에서 어느 순간 갑자기 마음을 움직이는 친밀감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바닥의 물이 신나게 흩뿌려지고, 낮게 굽은 나뭇가지들이 스쳐 지나가고, 타이어가 기분 좋게 땅을 밟으며 소리를 내고, 나뭇잎 사이를 뚫고 떨어지는 빗방울이 가죽 내장재를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까지도 감각적이다.
오프로드 주행을 마치고 날씨가 궂어졌지만 나는 다시 지붕을 씌우지 않는 쪽을 택했다. 사진가를 위해 시트 열선만 작동한 채로 남쪽을 향해 나머지 여정을 이어 나갔다. 분명한 것은, 아스팔트 위에서 이보크의 접지력이 갑자기 자연스럽지 않아졌다는 점이다. 물론 조용한 엔진이 중간 회전영역에서 43.8kg·m의 너그러운 토크로 힘을 보내고, 똘똘한 ZF 자동변속기와 탄력 있는 가변 기어비 스티어링의 도움으로 달리기는 적당히 여유롭다. 실내로 들어오는 바람을 더 줄이려면 선택사항인 윈드 디플렉터(쓸모 있는 트렁크 공간을 빼앗는다)를 선택해야 하지만, 그냥 세찬 바람을 맞는 편이 활기를 불어넣고 기분 좋게 만든다.
지붕을 연 차에서 다른 모든 사람들의 눈높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은 어색하면서도 즐길 만했다. 계획대로라면 서쪽에서 동쪽으로 달리며 브라이턴(Brighton)에서 여정을 마무리할 예정이었다. 동네는 위치상으로도 이상적일 뿐 아니라, 사람들의 편견없는 태도도 좋았다. 예를 들어, 은퇴한 유명 권투선수 크리스 유뱅크(Chris Eubank)가 트럭을 타고 다니는 모습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아마도 레인지로버가 지붕을 벗기고 다니는 것을 보아도 멈칫거리지는 않을 것이다.
해변의 눅눅한 습기를 무시하고, 나는 길 주변을 둘러싼 왠지 감상적인 풍경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무척 반가운 장소인 아이스크림 가게를 발견했다. 무엇보다 가게 바깥쪽 화물취급장에 주차해 놓으면 아주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가게에서 만난 대학생 나이쯤 되어 보이는 웨이트리스는 깜짝 놀라며 신이 나서 이렇게 외쳤다. “지붕 없는 레인지로버를 살 수 있을 줄 몰랐어요! 한 대 갖고 싶어요.” 인사치레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모든 자동차 회사들은 20대 초반 여성이 제품을 마주했을 때 그런 반응을 듣고 싶어 할 것이다.
하루를 더 이보크와 함께 보내고 나니, 컨버터블 개념은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본질적으로는 몇 가지 예측 가능한 부분에서 타협했고, 지나치게 높은 기본 가격이 부담스럽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레인지로버는 이미 브라이턴 사람들이 열광할 정도의 시크한 차로 인식되도록 스스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었다. 컨버터블에서 느낄 수 있는 가벼운 아찔함을 지닌 차를 라인업에 포함시킨 이유는 분명했다. 신발장 가득 놓인 촌스러운 신발 속에 패션 감각이 빛나는 운동화 하나가 놓여 있는 경우를 떠올린다면, 아마도 그 생각이 맞을 것이다.
출처: http://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5967139&memberNo=21293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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