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를 다시 탔다. 첫 만남은 2년 전이었다. 진하게 탔다. 무려 아이슬란드에서. 당시 쓴 기사 제목이 이랬다. ‘인터스텔라.’ 은하계를 탐험하듯 아이슬란드를 탐험했다. 이질적 풍광 속에 눈보라까지 쳤다. 낯선 곳을, 디스커버리 스포츠 덕분에 든든하게 누볐다. 첫인상이 좋았다. 여전히 좋을까? 그게 궁금했다.
외국에서 시승할 땐 아무래도 달리 보인다. 외국까지 갔으니 좋게 써야지, 하는 얘기가 아니다. 최대한 꾸미고 데이트하는 것과 평상복 입고 동네 산책하는 것 차이랄까. 함께 있다는 점만 같을 뿐 시선이 달라진다. 해서 브랜드에선 첫 발표 때 신차를 잘 표현할 최대치를 준비한다. 그 중 장소는 회와 무채 관계다. 이국적인 걸 넘어 이질적인 아이슬란드 풍광이야말로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디자인과 성격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였다. 확실히 통했다.
혹성 탐험 느낌을 줄 수 있는 곳과 혹성 탐험에 적합할 정도로 믿음직한 차. 랜드로버가 의도하는 바가 보였다. 의도는 합당한 실력으로 더욱 또렷해졌다. 무조건 외국이라서 좋은 건 아니었단 뜻이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듬직했다. 스터드 타이어를 착용하긴 했지만, 빙판길을 우직하게 달려 나갔다. 단거리 선수의 순발력보단 장거리 선수의 끈기가 발군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조금 달라졌다.
피렌체 레드라고 불리는 붉은 색을 머금고 마천루 아래 서 있었다. 아이슬란드 눈밭에서 본 은색과는 사뭇 달랐다. 오랜만이라 더 산뜻했다. 외관이 익숙해질 시간이 흘렀는데도. 우직하면서도 감각적인 전면부가 새삼 도드라졌다. 2년 정도 시간쯤은 금세 좁혀버릴 힘이 있었다.
그 사이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몇 가지 변화했다. 가장 큰 변화는 엔진이다. 2.2리터 터보 디젤 엔진에서 2.0리터 터보 디젤로 심장을 바꿔달았다. 어쩌면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마지막 조각이 맞춰진 셈이다. 인제니움 엔진은 재규어와 랜드로버가 공유하는 신형 엔진이다. 다운사이징 시대에 발맞춰 전략적으로 만들었다. 출력과 효율,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인제니움 엔진이 올라가면서 디스커버리 스포츠가 제대로 완성된 거다.
엔진이 바뀌었지만 감각은 비슷했다. 덜어낸 0.2리터는 기술력으로 채웠으니까. 처음에는 점잖게 출력을 뽑아내다가 터보래그를 통과하면 시원하게 밀어붙였다. 그렇다고 자기만의 시간대로 운전자를 끌어들일 마성은 없다. 디스커버리 스포츠 자체가 어깨를 벽에 밀어붙이는 펀치력이 있는 차는 아니니까. 오히려 운전자를 흥분시키기보다는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그만큼 차체를 잘 갈무리하며 달렸다.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엔진 회전 수 적게 쓰며 차분하게 달릴 때 더 맛깔스러웠다. 거동이 조급하지 않아서다. 눈밭도 안정감 있게 달렸으니 아스팔트에서야. 곡선보다 직선, 장식보다는 여백으로 채운 실내와 어울리는 승차감이다. 듬직하다. 믿음직스러우니 더욱 편안해진다. 소음 또한 적절히 잡아냈다. 운전하는 내내 마음이 차분해졌다.
물론 아이슬란드처럼 극적인 풍광은 없었다. 그렇다고 디스커버리 스포츠가 달라질까? 오히려 그때 그 풍광이 떠올랐다. 도심을 이질적인 행성으로 바꿔놨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어딘가를 향할 때 꽤 믿음직스럽다는 감상을 환기시켰다. 흐트러지지 않고 자기 자세를 유지하는 그 거동 덕분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나도 한결같은 친구처럼.
첫인상은 구겨지지 않았다. 2년 후에도 여전할 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SUV라는 장르적 특성이 뭘까? 넓다는 효율성보다, 시야가 넓다는 편리보다 믿음직스럽다는 감정이 우선하는 건 아닐까? 긴 세월 어떤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함께 이동해줄 존재로서. 2년 만에 만난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SUV의 본질을 떠올리게 했다.
내리기 싫어 한 바퀴 더 돌고 싶었다. 꼭 고성능 자동차에만 해당하는 소감은 아니다. 성질은 다르지만, 조금 더 거동을 즐기고 싶었다. 사람은 짜릿한 것에만 매료되지 않는다. 각자 서 있는 위치에서 성격이 분명할 때 다른 성질의 매력이 느껴지는 법이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오래 사귈 벗 같은 차다. 아이슬란드에서도, 서울에서도 실망시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