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THE KCC (OB들의 진솔한 이야기)_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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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KCC가 있기까지 수많은 희로애락을 함께한 OB들의 진솔한 이야기. 그땐 그랬지~

강원윤 ob
강원윤
1967년 어느 날 우연히 KPC 부설 한국전자계산소에서 사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서를 냈는데 그것이 KCC와의 첫 인연이자, 내 IT 인생의 출발점이 되었다. 입사 초기는 정말 힘들었다. 낮과 밤 가릴 것 없이 일을 하는 데도 회사 사정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이후 10여 년이 지나 DATA 100을 공급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자금이 돌기 시작했는데, 치안본부 주민등록 전산화 프로젝트가 큰 역할을 했다.
이후 프라임을 들여오기 시작하면서 KCC가 성장했다. KCC의 설립자이신 이주용 초대 사장님께서 회장직에 취임하신 1980년대 후반부터는 수년 동안 사장직을 맡아 대표이사직을 수행했다. 이후 물러남으로써 KCC에도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일어났다. 후임으로 이상현 사장이 취임하면서 KCC에도 새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KCC가 달려온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는 세계 초일류의 IT 국가로 성장했다. 여기에 얼마가 됐든 힘을 보탰다는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자랑거리다.
이제 세상은 3차 산업혁명을 넘어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었다. KCC의 사업도 IT를 넘어 오토 사업으로 지평이 넓어졌다. KCC의 반세기를 함께 한 OB 중 한 사람으로서 나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감과 사명감, 단지 그것뿐이다.

김영수 ob

김영수
1994년, KCC에 입사하던 시기는 연합컴퓨터의 사원들이 대거 이탈해 스트라투스 사업이 위기에 빠져있던 시기였다. 스트라투스의 경쟁 기종인 탠덤을 취급하던 나는 이상현 부회장과 뜻이 맞아 KCC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젊고 유능했던 이상현 사장과 공격적인 영업활동을 전개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BC카드 전산실 화재사고였다. 소식을 듣고 급히 현장에 가보니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UPS(무정전 전원공급장치)로 번진 불길로 기계실이 가스로 뒤덮여 있었고 잘못하다가는 컴퓨터와 하드디스크의 기판을 부식시킬 우려가 있었다. KCC 임직원들은 방독면을 곧 장 착용하고 화재 진압에 앞장섰다. BC카드 전산실의 숱한 협력업체 가운데 가장 먼저 불길 속으로 뛰어든 회사가 바로 KCC였다. 이날 KCC가 보여준 진정 어린 모습은 BC카드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훗날 신 시스템 수주전에서 KCC가 성공을 거두는 데 이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정명환 ob
정명환

1980년 3월, KCC에 공채로 입사했다. 수습 꼬리표만 간신히 떼고 다른 회사로 잠시 외도를 했는데 당시에는 획기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DBMS(DataBase Management System)를 처음 접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KCC로 복귀할 수 있었다. 3년이 지나 다시 KCC로 복귀한 후 캐드캠, 공공부문에서 개발 업무를 수년간 수행했다. 그리고 1990년대 초반부터 해외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KCC의 국제 금융 사업이 크게 활성화되던 시기, 국제 금융 사업 부문에 본격적으로 몰두했다. KCC의 해외거점 또한 활발히 구축했는데 홍콩, 뉴욕, 런던 등의 기반 마련을 직접 주도했다. 태국 철도청 사업도 직접 계약을 체결했던 게 엊그제 같은 데 벌써 창립 50주년이라니 세월이 참 빠르게 흘렀다. 인상 깊은 기억으로는 IMF 외환 위기로 KCC의 해외 진출에 제동이 걸렸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기였다.

조동민 ob조동민
첫 입사는 한국전자계산소 시절이었던 1969년이지만 길게 근무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20여 년 후인 1989년에 다시 입사해 2년간 KCC 사장직에 있었다. 초대 이주용 사장님, 2대 강원윤 사장님에 이어 3대 사장이었던 셈이다. 짧게나마 사장직에 있었던 1990년대 초반은 IT산업의 대격변기였다. 대단위 구조조정의 여파로 인력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했더라면 KCC는 지금 더욱 큰 회사로 성장했을 것이다. 스트라투스가 그 역할을 해주리라 기대했지만, 초기 사업이 어려움에 빠지면서 결국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KCC는 위기를 빠르게 극복했다. 뒤이어 취임한 이상현 사장이 혼란을 수습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낸 덕분이다.
물론, 당시 내가 맡고 있던 한국전자계산기술도 하드웨어(CE) 역량을 바탕으로 KCC의 조속한 정상화에 힘을 보탰다. KCC는 새로운 기술이나 시장의 흐름을 아주 잘 파악하는 회사다. 그러면서도 판단은 늘 신중하다. 혹자는 KCC가 IT기업 치고는 판단이 지나치게 조심스럽다는 비판도 하지만,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안정적인 경영이 KCC 50년 역사의 바탕이 됐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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