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ycan과 함께 돌아온 PWRS, 포르쉐 월드 로드 쇼

0

포르쉐에서는 독일 본사에서 차량을 공수해 아직 포르쉐의 매력에 빠지지 못한 순수한 고객들을 대상으로 하루 종일 여러 종류의 포르쉐 차량을 운전해 볼 수 있는, 그것도 심지어 정식 트랙에서 운전해 볼 수 있는 이벤트, 포르쉐 월드 로드 쇼 (Porsche World Road Show, 이하 PWRS)를 2년마다 진행한다. 원래 홀수 해마다 진행되어 왔던 이 행사는 올해 포르쉐 최초의 전기차, 타이칸의 공개에 맞춰 2년의 쿨타임이 돌아오기 전 다시 용인 스피드웨이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사실 포르쉐에 매력에 아직까지 빠지지 못한 고객들이라면 생각보다 높은 가격(2019년 기준 66만원, 2020년 기준 77만원)에 참석을 망설이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77만원이라는 금액은 필자와 같은 일반 직장인을 기준으로는 생각보다 비싼 금액이고, 이 금액으로 할 수 있는 너무 많은 합리적인 선택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이에게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5성급 호텔에서 1박의 호캉스, 아니면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서의 한 끼가 더 만족스러운 소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의 어머니께서는 항상 이야기하셨다.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상태로 무언가를 판단하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건방진 일이다”라고, 경험하지 않은 PWRS를 비싸다고 판단하는 것은 PWRS 기획자에게 가혹한 평가 일수도 있기에 과감하게 직장인에게 가장 중요한 주말의 하루와 비용을 투자하여 직접 경험해 보기로 하였다.

올해 PWRS가 열리는 용인 스피드웨이에 도착을 하니, 눈앞에 천연색의 포르쉐들이 반원을 그리며 주차되어 참가자들을 반기고 있었다. 분명, 검은색, 흰색의 색상의 차들도 같이 주차되어 있었음에도 필자의 눈에는 천연색으로 느껴졌다. 아마도 모니터 속에서만 보던 차량들을 실제 눈앞에서 목격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이번 PWRS를 위해 포르쉐에서는 총 24대의 차량을 독일에서 들여왔다. 자연흡기 엔진으로 돌아온 카이맨 GTS 4.0, 달리기를 위해 극단적인 다이어트에 성공한 박스터 T 등 718 차량 4대, 992로 불리며 클래식함과 미래지향적 디자인이 공존하는 911 차량 7대, 한국에는 출시되지 못한 카이엔 쿠페 터보 S E-하이브리드를 포함한 카이엔 차량 3대, 마칸 터보와 마칸 GTS 등 마칸 2대, 역시 한국에는 출시되지 못한 파나메라 GTS 스포츠 투리스모를 포함한 파나메라 3대, 그리고 이번 PWRS가 짝수 해에도 열릴 수 있게 한 1등 공신 타이칸 6대와 많고 많은 포르쉐 끝판왕 중 하나 911 Cup car 1대가 고객들의 눈을 행사가 시작하기도 전에 호강시켜주었다.

이번 행사는 코로나로 인해 참석 인원을 축소시키고 테이블 간격 조절 및 가림 판 설치 등 고객의 안전을 위해 굉장히 신경 쓰는 모습을 보여줬다. 리셉션에 도착하자마자 받았던 웰컴 키트에도 포르쉐 로고가 들어간 마스크와 장갑, 가글액과 손소독제가 들어 있어 조금은 걱정을 덜고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오늘의 행사를 담당해 줄 인스트럭터의 소개가 진행되었는데 뉘르부르크링 24시 출전으로 유명한 강병휘 선수, 슈퍼레이스 GT1 클래스에서 활약한 조선희 선수, TCR korea에 출전했던 앤드류 킴 선수, 드리프트로 유명한 최지웅 선수, 두 명의 해외 인스트럭터 등등 오늘 하루 행사 참석자를 이끌 이들의 네임밸류도 포르쉐의 명성에 못지않다고 느껴졌다. 인스트럭터 소개 후 모든 참석자는 4개의 조(Carmine Red, Acid Green, Miami Blue, Lava Orange)로 나뉘어 행사를 시작하였다.

Miami Blue 조에 속한 나의 첫 번째 세션은 4 Door Sportscar Handling이었다. 말 그대로 4도어 차량, 파나메라와 카이엔 차량의 성능을 체험해보는 코스. 사실 트랙 주행은 처음이기에 처음부터 고성능 스포츠카를 먼저 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도 잠시, 곧이어 정통 스포츠카가 아닌 럭셔리 세단과 SUV의 주행성능에 의심이 들었다. 포르쉐에서는 모든 차량이 스포츠카라고 이야기하지만 대부분의 고객들은 일반 도로 내에서 그 정도까지의 주행성능을 경험해 보기 어렵기에 카이엔과 파나메라의 주행능력을 한계치 가까이에서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느낌이 왔다. 인스트럭터의 주행을 뒤따라가며 용인 스피드웨이의 특징과 주의점을 들은 후 점차적으로 속도를 높여가며 카이엔과 파나메라를 한계 가까이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과연 포르쉐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여유로운 가속능력, 안정적인 브레이킹과 핸들링이 내가 타고 있는 차의 정체성에 대해 의심하게 만들었다. 특히나 한국에 출시되지 않은 카이엔 터보 S E-하이브리드는 전기모터와 터보 엔진의 조합으로 인한 압도적인 출력으로 그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은 날렵함으로 트랙을 누비고 다니게 해줬으며, 스포츠 플러스 모드는 차체의 서스펜션을 조절하여 넘쳐나는 출력을 안정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게 도와줬다. 세단과 SUV로 시작한 트랙 주행은 남아있는 세션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게 해주었다.

두 번째 세션은 이 행사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포르쉐의 전기차, 타이칸의 주행이었다. 페르디난드 포르쉐가 1890년대에 처음으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을 만들었을 때, 타이칸의 성능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첫 세션을 마치고 카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오니 오늘 체험해볼 타이칸 3대가 나란히 서있었다. 911을 늘려 놓은 듯하면서도 파나메라를 줄여 놓은 듯한 실루엣의 타이칸은 확실히 미래 지향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옵션을 추가하여 푸른빛이 도는 헤드라이트는 포르쉐 고유의 보닛 디자인 아래에서 확실히 전기차의 시대와 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주행은 과연 전기차답게 압도적인 가속능력을 보여주었다. 차량 바닥에 배치된 배터리로 인한 안정적 무게 배분 때문인지 2톤이 넘는 차량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운동능력을 보여주었고 트랙을 절반 정도 주행하였을 때부터 켜본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마치 자동차가 아닌 우주선을 운전하는 느낌을 주었다. 전자 장비를 통해 나온 사운드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으나, 자동차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이질적인 사운드였기에 오히려 전기차에는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한 바퀴의 주행을 마치고 온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타이칸의 제로백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스프린트 세션이었다. 용인 스피드웨이의 메인 스트레이트 코스에서 진행된 이 세션은 이번 체험의 백미였다. 2.8초에 불과한 제로백은 실제 운전대를 잡고 체험해보니 가히 공포스러울 정도였고 가속력에 짓눌려 헤드레스트에 고정된 머리를 돌려 계기판을 보았을 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1G라는 G 포스 값이었다. 짧지만 강렬했던 체험 후에는 “포르쉐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커져가는 전기차 시장에서도 포르쉐는 포르쉐 다운 모습으로 시장을 선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점심 식사 후 세션은 포르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스포츠카 모델들을 직접 운전하는 2 door sportscar 세션이었다. 992와 카이맨으로 구성된 조합에서 나의 관심을 가장 끄는 것은 911 GT3 RS 차량이었다. 비록 현행 모델이 아닌 한세대 아래의 모델이었지만 가장 압도적인 모습을 뽐내며 피트에 서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놀라운 즐거움을 선물해 준 모델은 다름 아닌 카이맨 모델이었다. 박스터의 형제라고도 불리는 이 모델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지는 못하지만 확고한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는 모델이기도 하다. 실제 카이맨을 트랙에서 몰아보니 미드쉽 엔진과 포르쉐의 완벽의 무게 배분으로 992대비 상대적으로 부족한 마력임에도 운전하는 즐거움은 훨씬 큰 반전이 있었다. 물론 911의 끝판왕이라고 하는 GT3 RS도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의 성능을 보여줬다. 경량화를 위해 손잡이까지 끈으로 바꿔버린 GT3 RS는 트랙에서 너무나 빠른 스피드로 너무나 안정적으로 주행할 수 있게 해주어 한계까지 차량을 운전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인스트럭터의 지시보다 빠르게 달리고픈 욕망을 애써 누르고 피트로 들어와 차에서 내리는 길은 아쉬움 때문인지 아니면 너무 낮은 차고 때문인지 쉽지 않았다.

오늘 행사의 마지막 세션은 슬라럼과 브레이킹 세션이었다. 992 Turbo S 차량을 가지고 진행된 런치 컨트롤 및 풀 브레이킹 테스트는 자동차의 한계를 시험해 보는 느낌이었다. 행사 6일차에 참석하였는데 행사기간 내내 동일한 Turbo S 차량으로 하루에 약 100번가량의 런치 컨트롤을 테스트하면서 단 한 번의 고장이 없었다는 점이 바로 포르쉐가 신뢰받는 이유라고 생각됐다. 또한 Porsche Ceramic Composite Brake(이하 PCCB), 포르쉐 세라믹 브레이크가 장착되어 있는 Turbo S를 런치 컨트롤 후 풀브레이킹 해볼 수 있는 기회도 가졌는데, 정말 말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을 듯이 멈춰졌다. 단일 옵션 중 가장 비싸다는 PCCB의 가성비에 대한 의구심은 바로 사라졌다. 타이칸과 비슷한 제로백을 가지고 있는 차량임에도 두 모델의 제로백 테스트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타이칸의 느낌은 밑도 끝도 없는 가속의 느낌이었다면, 911 터보 S는 무언가 터보 엔진과 교감이 엑셀 페달을 밟은 발끝에서 이뤄지는 느낌이었다. 전기차의 매력도 어마 무시했지만, 전통적인 내연기관 엔진에게도 충분한 매력이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2개의 서로 다른 매력에 두근대는 마음을 뒤로하고 하루의 마무리를 위해 박스터 T에 올라탔다. 다음 세션은 슬라럼으로 무게 이동에 민감한 세션인 만큼 경량화된 박스터 T에 최적화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국내 유명 레이서인 강병휘 선수에게 원 포인트 레슨을 받은 후 2번의 타임 어택이 이뤄지는데, 나 자신의 기록 달성도 재미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주행을 구경하는 것도 큰 재미였다.  강병휘 선수는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여 앞뒤 무게 이동을 줄이고 좌우 반동을 이용해서 주행하면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박스터는 생각보다 심한 롤링에도 트랙을 이탈하지 않으니 속도를 높여도 된다고 하였으나, 막상 도전해보니 나의 안전 운전 본능은 나의 기록 경신을 위한 의지보다 매우 강했고 그룹 1등에게 수여되는 상품은 그렇게 나를 떠나갔다. 하지만 상품이 나에게서 멀어진 만큼 박스터의 운동능력은 더 크게 다가왔다.

모든 일정이 끝나 아쉬움을 삼키고 있는 그때, 포르쉐에서 인스트럭터가 운전하는 911 Cup Car, 992 4, 카이맨 GTS 4.0, 그리고 파나매라 GTS 스포츠 투리스모에 대한 택시 드라이빙 추첨을 위해서 하나의 뽑기 통을 가지고 등장했다. 트랙 운전이 처음이었던 내가 운전해도 충분한 성능을 뽐냈던 포르쉐 차량들을 인스트럭터들이 한계까지 몰아붙이면 어떠한 느낌일지 상상도 가지 않아 모든 이들이 설레고 있었다. 사실 모든 이들의 희망사항은 911 Cup car 택시 드라이빙이었겠지만, 오직 6명에게만 그 영광이 돌아갔고, 너무나 당연하게 나에게는 그런 행운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992 4에 탈 수 있는 오렌지 볼을 뽑았고, 992에 탑승한 순간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분명 오전에 내가 운전했을 때에는 데일리 카로도 충분히 쓸모가 있음을 어필했던 992가 전혀 다른 굉음을 내뱉으며 150키로가 넘는 속도로 코너를 돌파해 나갔고, 나의 본질은 극한의 스포츠카라고 외치며 트랙을 가로질렀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트랙을 돌며 이미 충분한 주행을 통해 포르쉐 차량들의 주행성능을 실감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포르쉐가 날 배려해 주고 있었고, 극한의 성능을 뽑아내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차량이라는 반전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야 포르쉐를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느낌과 동시에 꿈과 같았던 포르쉐와 함께하는 하루도 끝이 났다.

직장인에게 소중한 휴일, 결코 저렴하지 않은 가격. PWRS 참가를 결정하고 들었던 많은 걱정들은 첫 세션이 시작되자마자 사라졌다. 살면서 이렇게 다양한 포르쉐를 마음껏 타볼 수 있는 경험을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이나 해봤을까? 시승차로 일반 도로를 달리면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포르쉐의 진정한 매력을 느끼기 위해서는 PWRS의 참가가 필수라고 느껴졌다. 슬라럼, 런치 컨트롤 등 트랙에서도 시도하기 힘든 세션의 구성도 만족스러웠다. 예전 광고 문구처럼 정말로 좋은데 어떻게 말로 설명하기 힘든 PWRS 매력은, 결국 직접 참가해 경험해 봐야 한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 PWRS의 참가를 고민하셨던 분이라면, 내년 혹은 내후년에 찾아올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당부 드리며 글을 마치겠다.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