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꿈꾼다! 랠리에 도전하는 혼다 엔지니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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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자유에 관해 가장 깊게 생각하게 되는 순간은 그것이 부재할 때일 것이다. 랠리 드라이버들이 험난한 여정에 몸을 던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끊임없이 의지를 시험하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순간이, 자유에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인 까닭이다. 험준한 지형 속에서 시시각각 느껴지는 자동차의 한계를 확인하며 장거리를 달리는 랠리는 누구에게나 어렵다. 그런데 여성 드라이버의 참가만 받는 랠리가 있다. 그리고 이 랠리에, 혼다의 여성 연구원과 엔지니어가 팀을 이뤄 도전한다.

 

 

포장되지 않은 험난한 도로를 장시간에 걸쳐 달리는 랠리는 모터스포츠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이 같은 랠리는 이는 자동차 역사의 초기자동차 제조사들이 내구성을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분야마다 차이가 있지만, 랠리는 비교적 빠른 시기에 여성의 참여가 이루어진 이례적인 분야였다. 20세기 초프랑스의 여성 레이서 듀 카스는 파리다카르 랠리 1,200km 구간을 완주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이를 권유한 이는 다름아닌 카스의 남편이었다. 그러나 자동차의 성능이 향상됨에 따라 이를 시험하기 위한 랠리 코스도 극한의 험난함을 지향하면서, 여성 랠리스트의 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하지만 20세기 중후반에 들어서도 험로를 지배한 걸출한 여성 랠리스트들이 배출되었다. WRC의 전설인 미쉘 무통은드라이버로서의 은퇴 후 대회 운영책임자로서 오히려 선수들의 안전을 위협할 정도의 험난한 코스 세팅을 주장할 정도였다. 랠리 무대를 공략하기 위한 주요 역량인 지구력과 창의력 등은, 성별을 떠나 누구에게나 도전적인 수준이 요구되었다.

이러한 의미를 살려미국에서는 2016년부터 여성들만이 참여하는 <레블 랠리>라는 대회가 열리고 있다자동차의 극한 성능 테스트 장소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한 네바다 사막에서 진행되는 이 랠리는 총 연장거리 2,400km를 넘는 험난한 코스다사막이라고 하지만 평평한 곳이 없고 곳곳이 요철투성이 암석지대인 이곳은 낮 최고기온 56도에때로는 바람 한 점 없는 시간이 있을 정도로 극악의 환경이다이곳에서 여성들로 이뤄진 랠리 팀이 자동차 제조사의 역량과 드라이버들의 명예를 걸고 승부를 겨룬다.

 

 

레블 랠리의 설립자이자 베테랑 여성 랠리스트 에밀리 밀러는 속도보다는 경로 확인의 정확성이 레블 랠리의 본질이다라고 강조한다레블 랠리 참가자들은 오로지 나침반과 지정된 지도만을 활용해 목표지점을 찾아야 한다그리고 숨겨진 포인트를 정확히 통과하는 것도 관건이다거칠고 광활한 사막에 자신들의 길을 만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이 랠리의 묘미인 셈이다덕분에 설립된 지 만 3년밖에 되지 않은 레블 랠리는 참가 열기도 높고 따라서 대회의 질도 우수하다.

 

 

이번 대회에는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혼다 R&D 부서의 두 연구원과 오하이오 공장의 두 엔지니어가 출전한다먼저 R&D 부서에서는 제품개발 연구원인 아리엘 젠과 외장 디자이너 릴리 멜리키안이 한 팀을 이루었다오하이오 공장에서는 충돌 테스트 전문 엔지니어 미셸 클라인과 엔진 테스트 엔지니어인 마리아 기타가 팀을 이뤄 출전한다.

 

레블 랠리에는 2개의 클래스가 있다트랜스퍼 케이스를 갖춘 차량을 포함한 4륜 구동 클래스와, 2륜과 4륜 모두를 포함하는 크로스오버 클래스가 있다참고로 크로스오버 클래스의 4륜 구동 방식은, 극단적인 험로에 대응하는 4륜 하이-로우 트랜스퍼 케이스를 적용하지 않은 차량을 중심으로 한다.

R&D 부서의 아리엘 젠과 릴리 멜리키안은 데저트 드리머라는 팀명으로 출전한다차량번호 208번의 SUV 파일럿이다오하이오 공장의 엔지니어 미셸 클라인과 마리아 기타로 구성된 팀은 ‘릿지라인 레블이라는 팀명을 갖고 출전한다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차량은 혼다의 픽업트럭 릿지라인이다릿지라인은2017년 북미 올해의 픽업트럭에 꼽히기도 한 자동차다.

사실 자동차 제조사의 연구원이나 엔지니어가 자동차의 내구도 테스트를 위해 랠리 등 모터스포츠 대회에 출전하는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연구원과 엔지니어들은 고급 인력이다사고가 잦은 랠리의 특성 상 자칫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손실이 될 수도 있다그러나 혼다는 연구원들의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이는 자산이라고 판단하고토런스의 R&D 부서와 오하이오 공장 모두에서 지원자를 받았다.

아리엘 젠은 혼다의 자존심을 증명해 내고더 나은 기회와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기업의 고위층에서도 긍정적으로 인식했다며 랠리 참가가 결정된 경위를 밝혔다혼다 역시 엄연히 테스트 드라이버를 두고 있지만연구원이 직접 현장에 나가는 것만큼 정확한 피드백을 받을 수는 없다특히 이번에 랠리에 참가하는 두 차종에는 모두 험로 주행 시 마찰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가변 토크 매니지먼트(i-VTM4™) 기능이 탑재돼 있다혼다의 차량이라면 험한 랠리를 극복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혼다의 연구원들을 랠리로 이끈 가장 큰 동력이라 할 수 있다특히 릿지라인에는 노멀진흙눈길모래 등 각기 다른 마찰계수를 지닌 노면 환경에 대응하는 토크 조절 시스템인 인텔리전트 트랙션 매니지먼트(ITM)이 적용되어 있다.

두 자동차 모두 파워트레인은 3.5리터 VTEC 엔진이 적용된다강력한 토크의 최고 출력 280hp(6,000rpm), 최대 토크 36kg∙m(4,700rpm)를 발휘하는 3.5리터(3,471cc) V6 VTEC 엔진이 적용된다이 엔진은 VTEC 특유의 고회전 안정성과 SOHC의 우수한 토크를 조화시킨 엔진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특히 검증된 내구성은각기 다른 차종으로 출전하는 팀들 중에서 우위를 점하는 영역이다.

랠리의 고단함은 새삼 더 말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특히 거칠고 광막한 사막 환경에서 길을 찾아가는 것은 정해진 경로를 빠르게 달리는 트랙에서의 스프린트 레이스와 다른 압박감으로 도전자를 절망의 위기에 빠뜨린다진짜 절망하게 되면 반역(rebelle)은 실패로 끝나게 된다그러나 혼다의 연구원과 오하이오 공장 엔지니어들은 팀에 대한 믿음 그리고 파일럿과 릿지라인에 대한 견고한 믿음으로 험로를 헤쳐나갈 준비가 됐다. 2018년 레블 랠리의 막은 10월 11일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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