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출력 400~500ps대의 고성능 머신은 아니더라도, 동급 배기량의 다른 차종보다 출력이 높은 자동차를 구입하게 되면 한 가지 고민이 생긴다. 바로 고급유라 불리는 고옥테인 휘발유를 주유해야 할지 일반 휘발유를 주유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고급유란 무엇이며, 자동차의 동력 성능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흔히 고급휘발유(이하 ‘고급유’)는 비싸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의 정보에 의하면 2018년 10월 현재, 서울 지역 주유소의 고급유 평균 가격은 1,800~2,000원대에 달한다. 동일 지역 기준, 일반 휘발유의 평균 가격이 1,760원 대인 점을 감안하면 평균 200원 이상 높은 가격이다. 따라서 고급유는 일반 휘발유에 비해 그 품질이 우수한 휘발유로 알고 있는 이들도 있다.
노킹이란 실린더 내 온도와 압력이 불필요하게 높아지는 까닭에 발생하는 휘발유의 이상 폭발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최고 출력 200ps, 최대 토크 25kg∙m 미만의 자연흡기 엔진이라면 노킹이 발생한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터보 차저 등을 적용해, 실린더 안의 압력을 높이는 엔진은 배기량 대비 높은 출력을 발휘하지만 그만큼 실린더 내 온도가 높아 노킹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고성능 차는 아니더라도 압축기의 냉각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을 때도 노킹의 위험은 발생한다. 이 때 휘발유의 옥테인가가 낮은 경우 위험은 배가된다.
그렇다면 옥테인값에 따른 고급유는 어떻게 분류되고 있을까? 통상 옥테인값은 RON(Research On Number)라는 약어를 단위로 한다. 현재 한국에서는 산업통상자원부령으로 94RON부터를 고급유로 본다. 참고로 일본의 경우에는 옥테인값이 높다는 의미로 ‘하이오크’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휘발유의 옥테인가는 엔진의 특성에 따라 필요한 정도가 다르다. 따라서 일상 주행 중심의 동력 성능을 갖춘 자동차라면 고급유를 넣어도 크게 달라지는 점은 느낄 수 없다. 특별히 해가 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비용을 더 들일 이유는 없는 것이다.
또한 출력이 높은 엔진이라도 자연흡기의 대배기량 엔진의 경우에는 옥탄가가 높은 고급유의 주유가 필수나 권장 사항이 아니다. 예컨대 최고 출력 284ps로 일상 주행범위를 넘어서는 동력 성능을 가진 혼다의3.5리터 VTEC 엔진은 일반유 주유만으로도 충분히 그 실력을 발휘한다.
최근에는 비교적 높은 최고 출력을 갖춘 과급 엔진 자동차라도 노킹 방지 센서를 통해, 옥테인가가 낮은 휘발유가 주유되더라도 적응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즉 실린더 내의 온도가 필요 이상으로 오르지 않도록 압축비와 공연비(혼합기 내 공기와 연료 비율)를 조절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동차의 사용설명서를 보면 고급유 주유를 ‘권장’하고, 일반유를 주유하면 최대치의 동력 성능이 발휘되지 않는다는 안내 문구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고 출력 256ps(6,500rpm)를 발휘하는 어코드 터보 스포츠에 적용된 2.0리터 VTEC 터보 엔진의 경우는 어떨까? 이 자동차는 국내 판매 중인 전륜 구동 세단 중 최고 수준의 동력 성능을 자랑한다. 공인 복합연비는 10.8km/L, 특히 고속도로에는 13.5km/L로 달리면 달릴수록 더욱 우수한 연비로, 터보엔진 자동차의 이상적인 모습을 구현한다. 이러한 효율을 위해서는 터보차저의 과급 압력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고급유를 주유해야 할지, 배기량을 보고 일반유를 주유해도 될지 살짝 고민이 될 수 있다.
여기서 VTEC 터보의 핵심적인 기술을 잠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특히 주행 성능을 강조한2.0리터 VTEC 터보 엔진은 혼다 VTEC 엔진은 혼다의 전통적 장점인 고회전 흡기포트를 잘 활용하고 있다. 이는 실린더로 흡입되는 공기의 흐름을 빠르게 하고 고효율∙고속 연소를 가능하게 해 토크와 출력은 높이면서도 엔진의 온도가 불필요하게 오르는 것은 방지한다. 고효율과 고속연소는 CVCC 시대부터 이어지는 혼다 엔진의 기본 가치로, 이것이 현대적인 VTEC 터보 엔진의 성능 구현에도 기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어코드 터보 스포츠는 굳이 옥테인가가 높은 고급유에 의존하지 않아도 충분한 동력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
혼다의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는 원 모델 원 엔진 철학을 제시한 바 있다. 이는 각 자동차는 그만의 성격이 부여되어야 하고, 이는 결국 핵심 부품 고유 엔진을 통해 구현된다는 의미이다. 어코드 터보 스포츠의2.0리터 VTEC 터보 엔진은 시원하고 압도적인 주행 성능을 원하는 이들을 주 타깃으로 한다. 그러나 동시에 불필요한 유지비를 쓰지 않고 실용적인 자동차를 원하는 이들도 만족시킨다. 효율을 포기하지 않는 드라이빙의 재미, 이것이 VTEC 터보의 매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