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C오토모빌] 이름 너머에 자리한 가치를 느끼게 하는 존재…랜드로버 디펜더 D240 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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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10월, 프랑스령 알제리 태생으로 미국의 포스트 모던 철학과 예일 학파를 대표하는 해체주의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숨을 거뒀다.

그는 언제나 고정적 의미를 타파하려는 해체주의 아이콘이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층 열린 가능성을 마주하는 자세로 시대를 살았다. 여기에 시간과 공간을 보다 입체적으로 마주하는 차연(Difference)’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쉽게 해석할 수 없는 프랑스어, 게다가 더욱 중의적이고 입체적인 구조로 서술되었던 그의 이야기를 모두 이해하기란 10대의 기자는 너무나 어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역시 너무나 어려운 이야기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추구했던 로고스 중심주의에 반하는 행보는 더욱 명확히 느껴진다. 이항대립으로 나누고, 명확히 정의하여 그 기준 안에서 모든 것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은 지금의 내게는 너무나 편협하고 일방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올 뉴 디스커버리의 기억

지난 2017년, 랜드로버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올라운더 SUV ‘디스커버리’의 새로운 시대를 알렸다.

1989년, 레인지로버와 유사하지만 조금 더 부담을 줄였던 존재로 등장했던 디스커버리는 세대 교체와 함께 이후 1세대 디펜더의 폐지와 맞물려 랜드로버의 ‘오프로드 플레이어’로 인식되었던 만큼 새로운 디스커버리를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못했다.

실제 5세대 디스커버리는 차량 곳곳의 여러 요소들과 새롭게 더해진 기술들은 랜드로버 최신의 존재처럼 ‘뛰어난 매력’을 갖췄다. 하지만 바디 온 프레임 방식을 택하지 않은 차체 구조와 함께 디스커버리다운 디자인이 아니라는 부분이 더욱 크게 강조되었다.

어쩌면 ‘디스커버리’라는 로고스에 가려 차량이 가진 가치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로고스를 달피하는 랜드로버의 의지

2019년 9월, 랜드로버는 환경 및 안전 기준 등에 대응하지 못해 시장에서 밀려나고 또 사라졌던 랜드로버의 또 다른 존재 ‘디펜더’의 부활을 선언한다. 프랑크푸프르 모터쇼에서 등장했던 새로운 시대의 디펜더는 여전히 거대한 체격을 자랑했지만 ‘디펜더’ 그 자체와는 사뭇 다른 존재처럼 느껴졌다.

실제 새로운 디펜더는 우리가 알고 있던 디펜더와 선명한 차이를 드러냈다. 전체적인 실루엣에서는 ‘디펜더 본연’에 충실했지만 여러 디자인 요소들은 말 그대로 펑키한 느낌이었다. 여기에 바디 온 프레임 방식이 아닌 D7x, 즉 모노코크 섀시를 사용한 것 역시 기대와 다른 모습이었다.

물론 새로운 모습에 호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지만 불만이 많았던 사람들도 상당했다. 특히 ‘이게 무슨 디펜더냐’라며 새로운 디펜더에게 ‘디펜더다움’을 요구하는 모습이 인터넷 상에서 상당히 활발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모습은 마치 새로운 디스커버리에게 ‘디스커버리다움’을 요구했던 이들을 떠올리게 했다.

새로운 시대 속 디펜더의 의미

전설적인 오프로더로 기억되고 있는 랜드로버의 디펜더는 단순히 ‘상징적 존재’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기억하는 전설의 디펜더는 ‘과거’에 있지만 지금 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는 디펜더는 현재의 랜드로버의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음을 보장하고, 브랜드의 미래를 약속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랜드로버 역시 이러한 의미를 강조한다. 새로운 랜드로버 팬들의 유입을 도모하고 오프로드에 대한 요구에 보다 충족해 ‘랜드로버의 사업성’을 이어갈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이는 일반적인 모든 ‘기업’의 행보와 같은 것이다.

디펜더를 기억하는 또 다른 방법

랜드로버는 이전부터 차량의 실내에 차량의 이름을 새기는 것을 즐겼다. 그리고 디펜더 역시 이러한 흐름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스티어링 휠은 물론 조수석 대시보드 패널 부분에서도 디펜더 레터링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신의 차량이라는 걸 강조하듯 새롭게 다듬어진 스티어링 휠과 디지털 클러스터, 그리고 LG와 함께 개발한 최신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피비 프로’ 및 메르디안 사운드 시스템은 ‘과거의 디펜더’는 상상할 수 없을 부분일 것이다.

과거의 것을 과거의 방식대로 ‘온전하게’ 복각해 사용하는 것도 기억의 방법이겠지만 ‘과거의 감성’을 빌려 지금의 스타일, 지금의 공법으로 연출하는 것 역시 분명한 기억의 방법일 것이다.

이는 디펜더의 도어 패널과 센터 터널 등에서 볼 수 있다. 실제 디펜더의 도어 패널과 센터 터널 일부 부분에는 리벳 공법을 느끼게 하는 디테일이 더해져 클래식한 감성, 견고한 감성을 느끼게 한다.

게다가 이러한 감성에 머무르지 않고 기능의 가치 역시 더해졌다. 실제 디펜더에는 다양한 편의 사양과 안전 사양이 더해졌을 뿐 아니라 기본적인 적재 공간의 여유 역시 느낄 수 있다.

디펜더의 트렁크 게이트 안쪽에는 1,075L에 이르는 넉넉한 공간이 마련된다. 기본적인 공간도 넉넉하고, 공간 구성도 무척이나 간결해 활용성이 기대될 뿐 아니라 상황에 따라 2열 시트를 폴딩할 수 있어 최대 2,380L의 공간이 마련된다.

오프로드의 기억, 한 발자국 더 나선 디펜더

초대 디펜더는 말 그대로 견고하고 다부진 존재다. 반세기 넘게 축적된 바디 온 프레임 노하우와 오프로드 주행에 대한 경험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큰 매력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2021년이다.

그때의 도로와 지금의 도로 환경과 사정이 다르고 차량을 타는 사람 자체는 물론 그 사람들의 삶의 형태와 모습이 달라졌다. 그렇기에 랜드로버는 20세기를 위한 디펜더를 선보일 수 없었고, 21세기를 위한 디펜더를 마련한 것이다.

대신 디펜더가 제시했던 정통 오프로더의 감성은 여전히 느껴진다. 견고하게 세워진 차체, 높은 시트 포지션과 넓은 시야는 여전히 유효한 오프로더의 감성이다. 대신 실내 공간을 수 놓은 각종 요소들과 최신의 기술들은 프리미엄 브랜드가 추구하는 기술적 우위를 보다 명확히 느끼게 한다.

디젤 엔진은 사라지는 추세지만 240마력과 43.9kg.m의 토크를 내는 2.0L 인제니움 디젤 엔진은 육중한 디펜더를 이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실제 발진 가속이나 여러 주행 상황에서 ‘무게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일상적인 주행부터 여러 사람과의 여행, 그리고 오프로드 주행에서의 견실함을 자아내기엔 부족함이 없다.

실제 디펜더 출시 시점에서 시승했던 오프로드 주행 성능을 떠올려 본다면 2.0L 엔진으로도 충분함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게다가 디젤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엄 브랜드의 차량답게 정숙성도 제법 우수해 ‘최신의 디펜더’의 가치를 선사한다.

클래식 디펜더의 전통을 살리길 바랬던 이들조차 아마 8단 자동 변속기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실하고 부드러운 질감을 통해 주행의 가치를 높인다. 실제 지금까지의 랜드로버 및 재규어의 차량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주 날카롭거나 기민한 반응은 아니지만 상황 대응력이 우수하게 느껴져 별도의 아쉬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 디펜더라고 한다면 많은 이들은 클래식 디펜더의 ‘강인하고 견고한 오프로드 성능’에 초점을 맞추리라 생각된다.

물론 랜드로버 역시 D7x 모노코크 섀시나 새로운 주행 관련 기술을 통해 오프로드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것처럼 실제 오프로드 주행 체험을 통해 그 탁월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디펜더의 진정한 매력은 ‘오프로드’에 한정되지 않은 만족감을 선사한다는 점이다. 실제 거대한 체격, 그리고 무거운 무게로 주행 중 약간의 부담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지만 일상적인 주행, 특히 도심 속에서 운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점이다.

단순히 ‘나쁘지 않네’ 수준의 평가가 아니라 ‘일상에서도 적합한 차량’이라고 평가할 만큼 만족스럽다. 실제 대다수의 주행 상황에서 새롭게 적용된 랜드로버의 D7x 모노코크 섀시, 그리고 최적의 셋업의 조화를 통해 체격과 무게에 비해 비교적 경쾌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에 앞서 설명한 것처럼 여러 편의, 안전 사양이 더해져 그 가치는 더욱 높으며 효율성 역시 만족스러웠다. 초대 디펜더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부분 중 하나일텐데, 실제 디펜더는 자유로 주행에서 리터 당 14.7km라는 걸출한 성과를 제시했다.

‘디펜더’에 머물러 있지 않은 새로운 디펜더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온 디펜더는 누군가에게 ‘나의 디펜더는 이렇지 않아!!’라는 투정 어린 질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과거의 디펜더에 머물러 있지 않으려는 랜드로버의 노력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디펜더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랜드로버 디펜더는 ‘디펜더’라는 이름에 묶여 있지 않고 ‘차연’을 직접 입증하고 있다.

기사출처 – 한국일보(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6150759000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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