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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C AUTOMOBILE (재규어랜드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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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무시무시한 판매량으로 성장하는 랜드로버.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그들은 파산의 늪에서 허우적댔다. 부활에 성공한 데엔 모기업의 든든한 지원과 경영진의 성과도 컸지만, 걸출한 디자이너의 영입이 ‘신의 한 수’가 되었다. 바로 랜드로버 디자인 총괄, 제리 맥거번(Gerry McGovern)이다. 그는 레인지로버 이보크를 시작으로 보수적인 랜드로버의 이미지를 벗기고, 세련되고 스타일리시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맥거번은 1956년 영국 코번트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크라이슬러의 디자이너, 로이 악세(Roy Axe) 눈에 띄었고, 크라이슬러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코번트리 대학에서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이후 런던이 로얄 컬리지 오브 아트(Royal College of Art)에서 운송 디자인 석사 학위를 따냈다. 1978년, 미국으로 건너가 크라이슬러에 입사했다. 자동차 디자이너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 이곳에서 피터 호버리(전 볼보자동차 디자인 총괄)와 머레이 칼럼(재규어 이안 칼럼의 동생이자 현 포드자동차 디자인 총괄)과 함께 일하며 탄탄히 실력을 쌓아갔다. 1982년, 맥거번은 영국의 오스틴 로버 그룹으로 건너가 다시 한 번 로이 악세와 재회했다. 이 기간 동안 맥거번은 미드십 스포츠카 MG EX-E를 빚었다. 비록 양산 모델이 아닌 컨셉트 카였지만, 250마력 뿜는 V6 3.0L 가솔린 엔진과 5단 수동변속기를 얹은 매혹적인 자동차였다. 또한, 그는 랜드로버 프리랜더를 디자인했다. 여느 랜드로버보다 작고 다루기 쉬운 프리랜더는 유럽에서 7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컴팩트 SUV로 선정된 바 있다. 공로를 인정받은 맥거번은 ‘사막의 롤스로이스’ 레인지로버 3세대 모델을 디자인했다. 투박했던 기존 모델에 투명한 앞뒤 램프를 심었고, ‘동생’ 디스커버리와 확실한 선을 그은 럭셔리 SUV로 탈바꿈시켰다. 1999년, 포드는 자사의 고급 브랜드인 링컨과 머큐리를 담당할 적임자로 맥거번을 지목했다. 맥거번 역시 새 도전을 원했고 미국 캘리포니아에 새로운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또한, 로얄 컬리지 오브 아트 후배이자, 현 애스턴 마틴 디자인 총괄 마렉 라이히만(Marek Reichman)을 데려와 링컨-머큐리의 혁신에 앞장섰다. 그러나 맥거번에게 맞는 옷은 랜드로버였다. 결국 2004년, 영국으로 돌아와 랜드로버에 합류한다. 주변에서도 “맥거번은 랜드로버의 DNA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고 랜드로버에게 가장 적합한 디자이너”라며 그의 복귀를 환영했다. 혁신의 시작은 LRX-컨셉트였다. LRX는 레인지로버 이보크의 모태로서, 스포티한 디자인과 젊은 감각 내세운 랜드로버의 신 병기였다. 2011년, 드디어 맥거번의 대표작 이보크가 등장했다. 기존 레인지로버에 없던 작은 뼈대에 날렵한 겉모습, 고급스런 실내로 치장한 레인지로버의 ‘뉴 챕터’였다. 맥거번은 “레인지로버의 전통에만 안주하지 않고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랜드로버의 새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이보크를 계기로 랜드로버의 모든 라인업은 총체적 진화에 나섰다. 4세대 레인지로버와 레인지로버 스포츠, 디스커버리 스포츠 등 젊고 감각적인 SUV로 변신했다. 이들은 랜드로버 고유의 네 바퀴 굴림 DNA를 계승하면서 첨단 기술까지 담았다. 디자인의 혁신은 곧바로 판매량으로 이어졌다. 2011년 9월, 이보크 출시 이후 계속해서 두 자릿수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고 현재는 최고급 SUV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다졌다. 맥거번은 “자동차 디자인은 차와 소비자가 서로 감정적인 교감을 느껴야 한다”며 “이보크에서 선보인 철학을 계속해서 담아가겠다”고 설명한다. 기존에 없던 SUV 컨버터블의 등장도 같은 맥락이다. 과연 맥거번의 랜드로버는 앞으로 어떠한 SUV들을 등장시킬까? 출처: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6464240&memberNo=21556957&navigationType=push KCC오토모빌 서초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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