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자동차 제조사들의 가장 큰 과제는 지역마다의 현지화 전략이다. 특히 가장 큰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의 전략은 제조사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미국 시장에 맞는 자동차는 환경 관련 법규 등이 비슷한 한국 시장과도 연관이 있다. 이런 점에서 반 세기 가까이 혼다의 미국 현지 전략을 책임지고 있는 오하이오 공장의 역할과 그 가치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지에 구축된 생산 공장은 해당 국가의 자동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초 기지로 활약한다. 무엇보다 생산과 판매에 필요한 비용 절감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현지 고용 창출로 해당 국가와 제조사 간에 호혜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코드는 미국에서 가장 먼저 생산된 일본 자동차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다. 1982년, 혼다는 어코드 2세대 세단을 오하이오 공장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당시 2세대어코드는 전장 4,410㎜, 전폭 1,650㎜, 전고 1,375㎜, 휠베이스 2,450㎜의 크기로, 배기량 1,751cc, 최고 출력 110ps의 EK-1 CVCC엔진을 탑재했다. 2세대 어코드는 현지 고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판매를 이어갔고 1985년까지 연간 14만 5천 대가 생산되었다.
그렇다면 혼다는 왜 오하이오를 택했을까? 20세기 중반까지 미국 자동차 제조업의 중심은 디트로이트로 대표되는 미시건 주였다. 오하이오는 미시건에 인접했을뿐 아니라 내륙 수운이 발달한 지역으로 물류 비용이 저렴하고 인구가 많아 노동력 수급이 용이했다. 미시건이 20세기 후반에 들어 쇠퇴한 반면 오하이오 주는 자동차 등 중공업뿐 아니라 경공업, 첨단 산업 등 넓은 스펙트럼을 갖춰 새로운 미국 제조업의 중심으로 발전했다.
혼다는 2세대 어코드의 성공에 힘입어 1989년 오하이오 이스트 리버티(East Riverty)지역에 새로운 조립 공장을 열게 된다. 이스트 리버티 오토 플랜트의 가장 큰 특징은, 당시로서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 물질을 저감하는데 선구적인 공장이었다는 점이다.
우선 자동차뿐만 아니라 생산 과정에서의 배기가스 절감이 필요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한 주변 토양에 오염을 일으킬 수 있는 일반 페인트 대신 수성 페인트를 적용했다. 여기에 레이저 용접 기술을 대량 생산에 적용한 최초의 공장으로, 공정의 효율성을 높였다. 이스트 리버티 오토 플랜트는 이러한 친환경, 효율적 공장 설립을 위해 메리즈빌 오토 플랜트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구하기도 했다. 당시 공장 건설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빌 홀츠베리(Bill Holtsberry)는 총 822개에 달하는 아이디어를 제공받았다고 밝혔다.
이러한 기조는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오하이오 공장의 자동차 생산 철칙은 토양오염의 최소화, 공정 시설 내 온도와 습도의 최적 제어를 통한 이산화탄소 저감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후반부터 파워트레인의 강성을 위해, 주조 시 들어가는 코크스의 양을 최적화함으로써 공정 중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혼다의 오하이오 공장은 지난 2015년, 미국 환경청(EPA)으로부터 E3(Encouraging Environmental Excellence) 골드 레벨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2017년 북미 환경 리포트는 미 대륙과 세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친환경 자동차 생산시설로 혼다의 오하이오 공장을 꼽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미국시장에서 주력으로 판매되는 혼다 차종은 오하이오 주에 위치한 오토 플랜트에서 생산된다. 혼다 브랜드의 어코드, CR-V 그리고 어큐라 브랜드의 TLX, RDX, NSX 등이 오하이오 오토 플랜트에서 생산되어 미국뿐만 아니라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미국 현지에서 생산되어 판매, 수출되는 차종과 수량이 일본 생산 규모를 넘어섰다. 2014년 <L.A. 타임즈>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공장에서 제조되어 수출된 혼다자동차가 2013년 10만 8,705대이며 일본 공장에서 생산된 차량은 8만 8,537대였다.
혼다는 꾸준한 품질 관리와 매 세대마다 혁신적인 성과를 보여 온 각 차종들의 선전을 바탕으로 규모와 브랜드 가치 그 모든 면에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캘리포니아, 앨라배마를 비롯해 멕시코 지역까지 공장을 확장하는 한편,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익스트림 스포츠용 자동차 공장 등을 별도로 운영하는 등 그 스펙트럼도 넓다.
이런 가운데 혼다의 미국 현지 공장 전략에 있어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오하이오 주 메리스빌 공장에서 수출용으로 제작한 100만 번째의 자동차는 바로 한국으로 향하는 어코드 세단이었다. 2012년 12월, 캘리포니아의 포트 와이니미에서 선적된 이 자동차는 2013년형인 9세대 전기형의 어코드 세단이다. 당시 어코드는 최고 출력 188ps의 2.4리터, 281ps의 3.5리터 VTEC의 두 가지 엔진으로 국내에 출시되었으며 내구성과 우수한 주행 성능으로 한국 수입차 시장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과거보다 자동차 생산 국가와 시장은 다변화됐지만, 아직도 미국은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생산과 수출의 중심이 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세계인의 베스트셀러 차종이자, 국내 자동차 시장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해 온 어코드 등의 명차를 생산해 온 미국 공장은 단순히 한 자동차 제조사의 생산 시설이 아니라 20세기 이후 자동차 산업의 지형도를 그리는 데 있어 큰 기준점이 되어 왔다. 향후 적극적인 전동화를 비롯한 뉴 모빌리티 시대, 미국의 혼다 공장들은 세계 자동차 시장에 어떤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지 귀추가 주목된다.